말로 하는 설명이 적은 영화가 좋다. 보여주고 상상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다. 불친절함과 애틋함은 한 끝 차이다.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데 설명이 적다면 불친절한 영화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다룬다면 애틋하다. 애프터썬은 후자에 속한다.

캘럼과 소피의 이별은 예정되어 있었다. 여러 암시가 있었다. 호신술을 가르쳐주고, 책을 읽어야 함을 알려주는 장면, 생일 축하를 받고 혼자 흐느낌, 트럭 앞을 아슬아슬 지나가는 캘럼, 검은 바다와 사람들 틈 속으로 들어가는 캘럼.

결국 왜 이별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정신문제로 접근금지 처분 내리기 전 마지막 여행이었는지,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병세가 점점 심각해져 가는 건지.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가 중요할까. 중요하지 않다.

종말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예정되어 있다. 모두가 이별할 것을 암묵적으로 약속한 채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별을 인지한다 해도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해 사랑하는 딸과 함께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지 못한다. 사랑하는 딸을 두고 밤바다로 뛰어들고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의 불완전함이 결의를 손상시키는 순간들이다.

그럼에도 캘럼은 매일 명상하고, 태극권을 수련하고, 딸과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전자는 가능한 한 이별을 늦추고 싶어서, 후자는 사랑해서.

소피는 이별할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11살이어도 직감적으로 알지 않을까 싶은데, 적어도 영화에서 암시된 건 없어 보인다. 며칠 더 있으면 안 되냐는 제안이, 이를 직감한 건지 아닌 건지. 나는 아닌 것 같다.

소피는 어렸다. 캘럼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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