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도 모른다면 AI에게 위임할 수 없다.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위임할 수 없다.
글간 링크의 관계, 폴더링의 기준을 임의로 맡기면 매번 달라지고 불만족스러워 매번 일을 그르칠 것이다. 직접 정의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처음 글간의 링크를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한 발단은 제텔카스텐 방법론이다. 매번 폴더를 만들지 않고, 하나의 뎁스에서 관련 있는 문서끼리 연결시키는 게 확장하기 쉬운 방법론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작성하고 있는 문서끼리 연결하는 건 좋았으나, 예전에 작성한 문서를 찾아서 연결하는 건 미흡했다. 다만 아쉬움일 뿐이고, 목적대로 잘 분류가 되어 좋았다.
두 가지 아쉬움이 더 있었는데, 인터넷이 연결된 전자기기에서 행했다는 것과 문서를 연결만 시켜놓고 이들을 융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근육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고민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다음 문장을 어떻게 쓸지, 이전 문장과 어떻게 연결할지, 다른 생각이 떠올라 수정하는 등 말이다. 그런 순간들을 전자기기와 함께하고 있었다면 내 이성과는 상관없이 도피해 버린다. 단축키로 인터넷을 키거나, 관련 없는 다른 문서를 확인하면서 머리로 고민해야 하는 순간들은 외면해 버린다.
그래서 적어도 글을 쓰는 것과 분류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분류가 소홀한 건 문제인데, 글을 쓰는 경험은 수기만한 게 없다.
수기로 글을 쓰는 건 불렛저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인덱스 페이지, 월간 계획, 일간 계획, 주제별 글쓰기 항목을 지니고 있다. 이들을 그대로 업로드하고 분류하면 되는 일일까?
분류는 데이터의 축적과 탐색의 용이성을 위해 필요하다. 데이터의 축적과 탐색은 필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메모하거나 분류하지 않는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기억으로 남지 않을 디테일이라면, 어차피 사소한 디테일일 테니 과감하게 버린다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 심플함에 이끌려 나도 어느 순간부터 분류를 어느 정도 포기했다.
사실 지금도 동의한다. 데이터의 축적과 분류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을까? 범용적인 지식의 축적과 탐색은 AI에게 맡기면 된다. 의미가 있는 데이터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 적은 글이다. 경험과 몰입으로 범용을 앞서간 지식이다.
이 둘은 생산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축적과 분류가 중요할까?
새로운 글을 생성할 때 축적한 모든 글을 확인하는 건 좋지 않다. 적어도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글을 작성한 이후의 시점이어야 답답하지 않은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다. 무엇보다 글쓰기 작성의 진입 장벽이 높아져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 기존 글을 탐색하고 융합하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에, 글쓰기가 귀찮은 일이 되고 만다. 즐길 수 없다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그럼에도 탐색이 유용한 순간들이 있다. 그때를 위해 분류를 해두는 게 바람직하다.
모든 글을 축적하고 분류해야 할까? 나중에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물건은 잘도 버리면서 글은 왜 그러지 못하는가?
버리자. 중요한 건 항상 나에게 남아있다. 범용적인 지식, 감정 해소의 글을 분류하는 데 의무감을 가지지 말자. 푸르고 명료한 글들을 축적하고 분류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