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유를 선고 받았다. 주어진 본질이 없다는 걸 안 순간부터

의미가 없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개인에게 최적의 본질은 존재한다. 개인의 모든 맥락을 종합했을때 그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본질이 있다. 이 생각에 따르는 것이 추천 알고리즘이다. 행동으로 드러난 정보를 취합하는 것이 현재는 맥락을 파악하는 최선이지만, 나중에는 행동 이전 단계에도 접근해서 맥락을 더 보충할 수 있을 것 이다. 뇌의 전기신호를 직접 읽는 식으로 말이다.

기술로 단 하나의 최적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뇌를 직접 읽어 그 사람의 삶의 의미를 파악해주는 기술이 있다고 해보자. 지금까지의 경험, 경험에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그 사람의 특성을 정의하고 그 특성을 발휘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로드맵까지 제시해주는 기술 말이다. 다들 원하지 않던가. 사주와 타로의 이름으로. 별자리, 사주, 타로, MBTI 보다 정교한 결과를 낼 것 이다.

기술은 위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집중하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위임하는가? 위임 자체는 공허하다. 더 중요한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 위임할때 공허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게 있는가?

하방은 올라가고 상방은 내려가, 편차가 줄어들 것 이다. 삶의 의미를 전혀 고민하지 않던 이들은 도움을 받을 것 이고, 고민하던 이들은 노력을 그르치게되 상방이 줄어든다.

기술을 기반으로 도움받아 상방을 더 높일 수 있는게 아니냐 물을 수 있다. 기반을 쌓아 더 나은 결론을 내리는 건 지식의 영역이고 과학적 사고 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건 지혜의 영역이다. 지혜는 주입될 수 없다.

원본 1